며칠동안 청소만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이제는 철 지나 입지 않는 옷들,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 지우고 싶은 기억과 연동되는 흉물들을 버렸다. 이사 가는 짐 못지 않게 버리고 또 버렸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과 살아왔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 순간에는 모두 필요하다고 여겨져서 돈과 바꾼 것들인데 이제 쓰임이 없으니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
한참 ZARA며 MNG, 꼬르떼 잉글레스(El Corte ingles)까지 Sol광장의 옷가게들을 출근도장 찍듯 드나들었던 때가 있었다. 매주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결국 난 내가 고집하는 스타일의 옷만 골라보고 마음에 드는 한 두가지 정도만 구입했다. 그마저도 없는 대부분의 경우 빈 손으로 둘러보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그럼 그 나머지 수천 수만의 옷들은 어디로 가는가...버려지는 것이었다. 각자의 기호가 다르고 내 선택 밖의 옷들이 가상 쓰레기라면, 내가 고른 이 옷 역시 누군가의 가상쓰레기인 셈이다. 결국 우린 쓰레기 더미에서 골라입는 것이었다. 내가 국제시장에서 중고 옷들을 헐값으로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때 새 옷이라며 신이나 돈을 주고 가져온 것들이 이제 재활용 옷 수거함에 담겨지고 그것들이 팔려나가 언젠가 다시 국제시장 중고 옷가게에 돌아오는 순환이다. 그걸 깨달은 밤 이후로 나의 옷 욕심은 조금 더 통제가 쉬워졌다. 내가 지금 사는 게 잠재적 쓰레기라는 생각을 한 후에...
옷 뿐만은 아니다. 학생용 책상 스탠드, 토스터, 접시, 열쇠고리, 말로 늘자면 그 이름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 사소한 잡동사니들 모두가 쓰레기였다. 필요하다고 사 둔 것들은 어쨌건 쓰임이 없어지는 순간, 의미를 잃고 쓰레기가 되었다.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잊고 싶은 사람들, 기억 속에 묻어버려야 좋을 것들에 대한 사진은 모두 찢겨져 나갔다. 내 사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른바 흑역사인 나도 모르고 싶은 나의 못난 과거들은 사진과 함께 버려졌다. 그러고보니, 지금 당장 없으면 안될 것 같은 그 무엇, 혹은 그 누군가는 절대 없어선 안될 것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들 없이도 이렇게 잘 살고, 버리고 싶은 것이 되기도 하니까......
엄마는 제발 그런 허무한 인생무상 같은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르다. 난 그게 의미없으니 거기에 집착하거나 메일 이유가 없다는 뜻이지 다 허무하니 포기하자는게 아니다. 그저 너무 목숨걸지는 말자는 거지.
치워도 치워도 버려도 버려도 나오던 쓰레기는 일단 정지 상태다. 내가 기준을 높이면 잠재적 쓰레기들은 실질적 쓰레기가 된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쓰레기는 계속 늘어간다. 새로운 물건을 매일 구입하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잠재적 쓰레기를 사고 그걸 실질적 쓰레기로 바꿔 버리는 굴레에 갇혀있다. 생이 지속되는 이상 누구도 이것은 멈출 수가 없다. 세상 어느 곳의 청렴한 종교인도 마찬가지다. 매일 음식물을 먹고 똥을 싼다. 음식물이 잠재적 쓰레기이고 똥이 실질적 쓰레기이다. 이런 식이라면 생과 사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남과 죽음 역시 각각에 대입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순환과 그것의 반복이다. 윤회. 돌고 돎.
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깨달음에서 시작되는 해탈이다. 깨고 벗어나서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것.
아... 이렇게 연결되다니... 청소하다가...
암튼 청소 한 번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