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0일 금요일

여우난골족


오늘은 2015 설 연휴의 마지막날이다.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는 명절의 여흥을 끝내려 가족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와 우리 가족, 이모네 역시 그렇게 한 테이블을 채웠다. 상반기에 설, 하반기에 추석이면 일 년이 간다고 추석을 지내고 나면 이제 올해 숙제 다했다고 다음 설까지는 걱정없다고 엄마는 늘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음력으로 어제가 새해 첫 날이었는데도, 한 해의 반이 훅 지나간 느낌이다. 한 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 잠도 안 자고 이렇게 쓰고 앉은 것은 먹은 갈비가 아직 소화되지 않음이 아닌 늦게 자는 습관 때문일뿐이리라. 그럼 이제 자 볼까 하다 엄마가 깨끗이 세탁해 준 이불보를 갈아 씌우고 책장을 두리번거리다 백석시집을 들게 되었다. 한 삼 년만인가. 처음 책장을 볼 땐 분명 당나라 시선집을 꺼내려했지만 뽑아낸 건 백석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펼치는 책은 항상 처음인듯 머릿말부터 다시 시작하다가 30쪽 내외에서 접는게 재미지. 그리고 다섯 번째로 읽은 시가 <여우난골족>이다. 
그전 같았으면, 우리도 여기 백석시인네처럼 엄매 아배따라 욱이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가 있던 진할아버지가 있었던 경주집으로 갔을텐데 올해부터 우린 삼촌네가 새벽부터 바삐 와야 할 큰집이 되었다. 시를 읽으면서 시인과 비슷했던 20년간의 우리의 40여 번의 명절과 20번의 할아버지 기일과 그만큼의 할머니 생신이 기억났다. 사실 그 보다 자주 우리는 함께 피서를 가고 소풍을 갔었다. 그러는 중에 나와 내 밑으로 어린 녀석들은 낮이면 같이 물놀이를 하고, 윷놀이를 했으며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밤에는 역시 잠자리 다툼이 있었고 그것은 주로 따뜻한 안방을 두고 또 각자의 엄마와 함께 잘 것과 코곯이가 심하신 할머니를 피하는 것을 두고 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더 , 좋은 베개 고르는 것도 은근 경쟁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그런 시덥잖은 것들로 우리는 다투고 웃으며 20년의 긴 세월을 보내 온 것이다. 그런데 꼬마들이 자라나면서 실상 명절의 재미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구성원 100%의 참가율이 슬슬 학업과 군대 등등으로 점점 60-70%로 낮아졌고, 놀던 아이들은 일꾼이 되어 전을 부치기 바빠졌다. 산중으로 성묘를 가신 어른들을 기다리며 끓여 먹던 라면이나, 내 주도로 이루어진 청소 작전, 성묘 후 돌아오시며 사다 주신 아이스크림은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우리는 없다. 이제 우리들의 "우리"가 달라졌다. 아이들을 어른으로 키워 낼 만큼 꽤 긴 시간이 흘렀음이고, 이후의 명절은 각자들의 "우리"와 함께하게 될 터였다. 
모든 일이나 순간은 기억에서 사라지면 애초에 없었던 것과 다름없이 된다. 사진이나 비디오, 녹음, 일기 혹은 기록 등의 보조장치가 없이 사람의 기억에만 의존할 때, 기억에서 사라지면 그 일은 애초에 없던 일처럼 아무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기억해야만 한다. 당신의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그 시절은 다시 없자난 이제 나에게 당시에 먹었던 경주 시내에서 팔던 팥하드나, 한과 강정-튀긴 쌀, 땅콩, 설탕시럽과 물엿으로 만든 우리가 "박상"이라고 불렀던-과, 걸쭉했던 추어탕, 고작 세개에서 다섯 남잣 열리던 석류로 기억되겠지. 잊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과 함께... 또한 같은 시간과 장소에 있었던 여러 당신들 또한 그렇게 사소한 것들과 나를 묶어 우리였던 시절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다음 추석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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